David Fincher’s The Killer

데이비드 핀처는 심리의 마술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지나치는 심리를 철학을 기반으로 영화라는 영상예술로써 너무나 잘 풀어내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제가 높게 평가하는 영화 작품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면서 지나치지만, 그 누군가가 꼬집어 주긴 힘든 사람의 심리나 감정을 잘 잡아내는 영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특히나 이 부분에서 인간의 무의식적인 nihilism을 참 잘 표현해 내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공감능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나도 느끼며, 내가 느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낍니다. 이것을 공감능력이라고 하지요. 우리가 수를 다루는 수학, 기계를 다루는 기계공학 등보다 사람을 다루는 인문학, 사람의 심리나 사람 기반의 이론을 다루는 철학에 더 많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의 꽃은 바로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작품에서 더 나아가 영화, 음악 등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은 공감을 사기도 하지요.

결국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예술작품들은

  • 누구에게 (매니아층이라면 매니아층, 대중이라면 대중들)
  • 얼만큼

많이 공감을 얻었느냐에 따라서 작품의 평판이 갈립니다.

그럼 과연 소수의 매니아층에게만 공감을 받은 작품은 형편없는 작품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소수의 매니아층이 결국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바이럴을 타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해 줄수 있지요.

결론적으로 매니아층이 느끼는 그 감성들을 대중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가진 공감능력의 어쩌면 무서운점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전염성의 바이러스처럼 공감은 퍼져나가니까요.

저는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적 부터 많이 봐왔던 파이트클럽을 포함해서 Gone Girl, Seven 등 핀처 감독의 영화는 항상 철학을 기반으로 사람의 nihilism을 참 잘 표현하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thought-provoking 하면서도 너무 이론에만 치우쳐져 있지 않고 공감을 잘 이끌어내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핀처 감독의 신작 더 킬러에서는 완벽을 추구하는 한 명의 살인청부업자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것이 성공의 열쇠다. 항상 의심하라. 이런 식의 말을 계속 되뇌이며 자신이 해야 하는 일들을 실수 없이 수행하던 한 남자가 한번의 실수로 인생이 뒤바뀌는 경험을 하는데 이런 스토리를 다룬 영화입니다.

결론적으로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영화에서 느낀점은 허영을 가진 사람과 허영을 가지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비교하는 느낌이 꽤나 강합니다.

이것이 아마 핀처감독이 꾸준히 표현하는 nihilism이 아닐까 싶습니다.

파이트클럽에서도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고, 전쟁 없는 삶이 시작되자 나오는 자본주의 시대의 허영을 비판하는 작품이었지요. 영화에서 주인공 타일러 더든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전쟁도 안 겪었고, 대공황도 겪지 않았어. 우리의 전쟁은 정신적인 싸움이야. 우리 인생 자체가 대공황이라고. 우리는 TV만 보며 자라면서 언젠가 백만장자가 되고 영화계 거물이 되고, 록스타가 될 거로 믿었어. 근데 우리는 그렇게 안될거야. 우리는 아주 천천히 그것을 깨닫고 있고, 아주 아주 열받았지.”

결론적으로 인간세계에서 전쟁이 끝나니 평화가 찾아오는 것 같지만, 그것은 허영이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사람의 허무주의로 빠지게 되고 자본주의가 주는 허영에서 벗어나며 진정한 자유를 찾으려는 타일러 더든의 행동들이 영화에서 나타납니다.

궁극적으로 핀처감독이 말하고 싶은 것은 허무주의인지, 허무주의를 승화시킨 진정한 자유인지.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대부분 핀처 감독의 영화의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느낀 허무주의를 진정한 자유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그것을 행동에 옮긴다는 점입니다.

어렵습니다.

돈이나, 자본주의의 물질들이 주는 만족감 혹은 fake relationship들이 주는 평판으로 인한 만족감이 이러한 소인들이 허영없이 행동하면서 주는 메시지에 굴복하는 장면들을 꽤나 많이 보여줍니다.

더 킬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을 쫓았던, 그리고 성공가도를 달렸던 자본주의 사회의 살인청부업자라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그 주인공은 살인청부업자 입니다. 한번의 실수라도 나오게 되면 그의 커리어는 망가지고, 인생자체가 망가지는 위기가 오게 되는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보면 제일 대표적인 직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실수를 하면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고 생각하고, 성공을 하려고 하고 성공을 못 하면 모두 실패라고 생각하는 문화들이 팽배합니다. 모두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이 굴레 안에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계적인 삶은 언젠가 한계가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런 자본주의 삶의 경쟁사회를 대표하는 한 남성이 실수를 합니다. 이때까지 자신들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위해 만들어 놓은 루틴이 깨진겁니다. 굉장한 허무함과 부정적인 감정들에 휩싸일겁니다. 자신이 잘 나갈때에와는 완전 반대인 상황이 만들어 졌고, 주변 사람들은 자신이 실수를 한 부분에 용서를 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 즉 중요한 모든 것들을 파괴하며 복수하려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괴물이 자본주의에 의해 버림 받았습니다. 이러면서 이 세상의 굴레를 깨닫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버려진 주인공은 자신만의 길을 걷습니다.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자신이 결국 하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평화가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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