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ko.wikipedia.org/wiki/두_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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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여러번 봤습니다.

다만, 이유는 크게 없습니다.

그냥 뭔가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 영화랄까요.

두 교황이라는 영화에서는 두 분의 교황님이 나옵니다.

두 분의 교황님은 스타일이 너무 다릅니다.

베르고글리오 (현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님은 비틀즈를 좋아합니다. 라칭거 교황님은 비틀즈를 모릅니다. 다만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으시나 봅니다.

교회를 바라보는 두 분의 시선도 다릅니다. 이때 까지 추구 해왔고, 앞으로 추구 하고자 하는 교회를 향한 생각도 다릅니다.

이렇게 너무나도 다른 두 교황님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서로의 고민을 나눌 때 이죠.

영화에서는 베르고글리오 교황님의 젊었을 때 했던 후회스러운 순간들을 비추어 줍니다.

그 이야기를 라칭거 교황님에게 털어놓지요.

베르고글리오 교황님은 그 일이 현재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과 굉장히 싱크가 맞지 않는 사건임을 기억하기 때문에 기억속에서 고통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죽을 때 까지 그 기억이 따라 붙을 것이고, 결론적으로 자신이 이중적인 사람으로 느껴지기 때문 이겠지요.

베르고글리오 교황님이 추구했던 카톨릭 신앙의 길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자신의 신도들과 예수회 사람들을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희생 시켰기 때문이지요.

그 이야기를 들은 라칭거 교황님은 베르고글리오 교황님의 죄를 사하여 줍니다.

라칭거 교황님이 가진 고민은 더 이상 하느님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 이었습니다.

성직자에게 하느님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은, 축구 선수가 다리를 쓰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현직 교황 이었던 분이 더 이상 하느님의 소리가 들리 지 않는다는 고민을 어떻게 쉽사리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두 분께서는 쉽사리 타협점을 찾기 힘든 너무나도 다른 분들 이었습니다.

공감대를 형성 하기에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두 분 께서 영화 마지막 즈음에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쉽게 할 수 없던 고민들을 서로에게 이야기 했고, 그 고민에 대해서 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누구나 고민을 합니다. 세속적인 삶을 떠나 성직의 길로 들어서서 교황이라는 자리에 오르신 분들도 말이지요.

이 영화를 보더라도 나의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지진 않습니다.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알려주는 영화는 아닙니다.

다만 이 영화를 보면서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라도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가진 고민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걱정거리를 하나 이상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가지고 계신 모든 걱정거리가 쉽사리 사라지진 않겠지만, 그 고민이나 걱정거리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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