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Paul
들어가며.
사실 송길영님의 호명사회라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유튜브를 통해서 몇 달전에 접하였다. 유튜브 인터뷰를 들어보면서 귀가 솔깃하는 주제들을 많이 이야기 하셔서, 그때부터 책을 사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막상 책은 11월 중순이 되어서야 사고 보게 되었다.
달라지는 오프라인 매장 풍경
롯데몰 교보 책방에서 샀는데, 오랜만에 교보 책방을 가보니 꽤나 많이 달라져 있어서 신선했다. 예전에 교보문고 가면 무조건 줄 서서 계산원분들이 계산해주기를 기다려야 했는데, 지금은 무인 키오스크 계산기가 보급되어서 편하게 계산이 가능했다.
핵개인.
사실 송길영 작가님의 시대예보 시리즈 첫번째 작품인 핵개인에 대한 책을 읽어보진 않았다. 한국사회가 핵개인화가 되어왔고, 그 이후에 핵개인이 된 개인들이 각자의 고유한 이름으로 호명을 하는 사회가 도래한다는 호명사회를 그 이후로 출간하신 것 같다.
사실 핵개인이라는 말에는 크게 영감을 받지(?) 못하긴 했는데, 이유는 너무나도 많이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개발자 진영에서만 보아도 몇 년전 부터 “OO회사의 K 개발자님” 보다는, “K 개발자님이 OO회사 다녔지?” 로 바뀌는 태세가 종종 보였다. 그 말은 즉슨, 개발 쪽 진영에서의 회사의 네임밸류는 곧 얼마만큼의 훌륭한 개발자를 가지고 있는가로 점점 가치 측정이 바뀌었다는 이야기인것 같다.
개발쪽이 현대 한국사회의 트렌드를 대표하는 직군 중 하나일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래도 가장 트렌드한 최신 직군 중 하나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뭔가 나와 결을 같이하는 개발자분들이라면, “OO 대기업” 보다는 “네임드 K 개발자님이 다니는 OO 스타트업”에 더 매력을 느낄 것 이다. 왜냐하면 “네임드 K 개발자님”과 같이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 💭
나는 이 심리를 동류와 함께하고 싶은 심리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무언가를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는 “사람”이 구직자 입장에서는 “회사”보다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 회사라는 조직보다는 능력있는 개인이 더 가치가 높아지는 전문화의 시대의 도래가 이미 몇년전부터 진행되고 있던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무(기)력화와 시뮬레이션 과잉.
이 부분은 호명사회 책을 읽으면서 꽤나 많이 공감했던 부분이다.
최근에 “8억을 대출받아서 12억짜리 집을 산” 이야기를 들었다. 이게 사실 말이 8억이지 12억 중에 8억을 대출받았다는 것은 결국 그 집의 가치를 구매자가 50%도 직접 지불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위와같은 이야기들이 이제는 놀랍지 만은 않다. 무한 시뮬레이션 시대에서는 꽤나 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와같은 현실에 무뎌졌다는 이야기 인 것 같기도 하다.
나만 해도 그렇다. 이직을 하거나 대학생때에 취업을 할 시즌에는 한 두군데 이력서를 제출해보다가 점점 이력서 제출과 불합격에 무뎌지게 되고, 그 이후로는 이게 자립을 위한 취업인지 무한 취업 게임인지 헷갈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무기력해지고, 적절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기에는 힘들어진다. 번아웃 혹은 무기력이 오게 되는 것이다. 결국 맹목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돌진하게 되는 것만 남게 된다.
나는 해당 맥락을 읽으면서 이러한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더 경쟁사회가 심화될 것인데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선택을 할 만큼의 에너지를 유지하면서 맹목적이지 않게 살수 있는가?”
위 질문에 대한 심플한 답은 “나만의 자산을 만드는 것”으로 나오게 되었다.
나는 위와같은 맹목적인 무기력증 현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 나의 것이 없으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게 되고
-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게 되고
- 결론적으로 남의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끼리 무한경쟁을 하게 되고
위의 리스트가 무한 반복이 되는 사회가 현재 한국 사회가 아닌가 싶었다. 결국 “나”라는 것이 주체가 되어야 맹목적인 번아웃이 오는 Vicious Circle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게 꽤나 말처럼 쉽진 않다. 남이 닦아 놓은 길을 가는게 제일 편하기 때문이다. 제도권 밖으로 나가고, “나”라는 제도를 만드는 일은 꽤나 외롭고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이 때에 필요한 것은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인데, 현대 사회는 실패를 받아들일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으므로 결국 이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다시 또 무한경쟁으로 들어서게 된다.
나의 생각 💭
결론적으로 “나의 것”이 뚜렷하게 되면 나라는 사람이 갖게되는 “선택권”이 커지게 되고, 무한 경쟁으로 맹목적인 선택보다는 ”나에게 맞는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월급 루팡 그리고 이직.
코로나 이후로 늘어난 원격근무, 그리고 거대 IT 기업처럼 직원수가 굉장히 늘어난 조직규모 등으로 인해 내가 다른 동료의 뒤에서 자연스럽게 월급 루팡 노릇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월급 루팡 노릇을 하게 되면 본인에게 결국 손해인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직이 어려워 진다.
잠깐 동안 편했던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월급루팡러들은 물경력이 되어버리고, 결론적으로 커리어를 유지해나가는 지속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
나의 생각 💭
개발자로 IT 업계에서 종사하는 나로써는 꽤나 많이 공감이 되는 주제였다. 나에게도 해당되는 주제이고 현재 진행형으로서 앞으로 당장 살아남기 위해서 여러가지 노력이 필요한데, 그 중 직장에서의 커리어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은 사람들이 안정적이지만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조직을 추구하기 보다는 “유능한 동료와 함께 성취감을 이루는 환경”을 제공하는 조직을 추구한다고 한다. 나도 이러한 조직을 추구하기에 많은 공감을 하면서 책을 읽게 되었다.
길어진 정년, 그리고 달라진 시대상.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던 그리고 그 욕망을 위해 자신을 만들어왔던 시기를 거친 한국 사회는 한번 더 핵개인이라는 존재로 진화하게 되는데, 이러면서 시대상이 달라지게 된다.
나의 “본진”을 활용해서 남의 것을 만들어 주던 회사생활에서 더 나아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생산해낸 사람들의 가치가 훨씬 더 인정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전 90년대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그들만의 것을 대중에게 내보였을때, 그 결과물이 제도권 밖에 있다면 그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현상이 있었다. 2000년대에 싸이가 챔피언을 들고 나와 싸이만이 할 수 있는 에너지를 내뿜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2020년대 현대사회에서 서태지는 한국 락의 선구자로 취급받는 사람이 되었으며, 싸이는 강남스타일을 기반으로 그만의 에너지를 매년 대형 콘서트와 행사를 통해 내뿜는 독보적인 엔터테이너가 되었다.
이제는 “핵개인화 된” 개인들이 남의 이름을 불러주는 “호명”을 할때에 조건이 붙는다. 만약 더 이상 나의 이름을 남들이 불러주지 않는다면, 즉 “호명되지 않는다면” 나는 이 사회에서 영향력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생각 💭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던 시대”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시대로 급격하게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다. 남들이 못하는 것을 하기에 그 가치는 더 커지는 현상도 나타나는 것 같다.
또한, 정년이 길어지면서 우리 아버지 시대처럼 한 직장에서만 몇 십년간 일하고 은퇴하는 시대가 아니게 되었다. 1차 정년 퇴직을 하더라도 2차 정년 퇴직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서 “나만의 것”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과 자립이 불가능한 사람의 삶은 꽤나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오와 본진.
작가는 앞으로 꼭 능동적인 사람이 아니더라도 N잡러를 추구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근데 그 N잡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내가 단순히 여러개의 무언가를 할 줄 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
N잡이라는 것은 Job, 말그대로 직업이 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려면 자신이 본진에서 뻗어나오는 무엇인가가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직업”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작가는 책에서 “직업”이라는 것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서, 요즘은 “취향”과 “조예”를 찾아주는 “단골”이 생기는 것이라고 정의했던 것 같다.
이렇게 “본진”과 “조예”라는 것을 찾아 나가려면 “호오”, 즉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구분이 분명해야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본진을 찾아나가게 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조예라는 것이 생긴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한국 사회는 내가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도 “노력”이란 것을 하게 되면 단점을 보완하게 된다고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 영미권 사회에서는 “노력”이란 것을 하려면 “재능”이 뒷받침 되어야 하고 그 사람이 본질적으로 가진 재능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과정을 더 중요시 한다고 하는 것 같다.
나의 생각 💭
결국 좋은 교육이란 한 사람이 무엇인가를 더 잘할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 되어야 하고, 그 사람이 무조건 노력만을 가지고 잘하게 되는 “노력”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더 타고나게 잘할 수 있는지 그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N잡의 시대가, 더욱 살아남기 어려워진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의 “본진”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고, 그것을 베이스 삼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 창조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로 나는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AI와 자동화, 그리고 질문.
앞서 글을 들어가며, 요즘 교보문고 매장에는 결제업무를 보던 사람들이 줄어들고 대부분 무인 결제 키오스크가 결제를 대신해준다는 점에서 매장 풍경이 참 많이 바뀌었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는 말을 남기면서 글을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자동화로 삭막하게 변했구나 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나의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과거에는 줄을 서서 계산원을 기다리고 그 계산원과 짧은 대화를 하면서 결제를 마치고 다시 돌아간다는 그 과정이, 책을 사기 전부터 무의식적인 부담으로 필자에게는 다가왔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책에도 비슷한 맥락들이 나오는데, 자동화 시대가 오면서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체하게 된 것이다.
눈길을 끌었던 점은 계산원이라는 직업의 대체 현상인데, 구매자가 세일즈 직원과 마주치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운 일로 여겨져 최근에는 무인매장이 많이 나오는 현상과 결을 같이하는 것 같다.
요즘은 정보를 개개인이 인터넷 등을 통해서 축적시킨 후에 매장에 방문하는 일이 많으므로, 굳이 옷의 사이즈 등을 안내해주는 정보 전문가가 매장내에 상주할 필요가 없는 현상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따라서, 필요한 정보는 본인이 구할 수 있게 매장 내에 정보검색기를 배치해두는 등으로 정보화 된 개인이 모든 것을 직접 처리할 수 있게 매장을 구성하게 되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 같다.
이러한 자동화의 시대, AI의 시대에서는 “개인의 정보화”가 심화된다. 그말을 즉슨, 개개인이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의 깊이와 양이 이전보다 더 많아지게 된다는 이야기이고, 굳이 일정 수준의 전문성만을 가진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개인이 전문화”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세무서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던 구시대에서, 이제는 인터넷 블로그 글을 통해 내가 직접 세무신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서 필요한 것은
근본적인 질문을 잘 던질줄 아는 것
이라고 책에서는 나오는 것 같다.근본적인 질문을 잘 던진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해당 부분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시도해보는 행위가 필요하다. 질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나오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능동적으로 시도해보고 좋은 질문을 던지고, 이러한 것이 선순환되어 더 나은 전문가가 되는 일이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의 생각 💭
AI시대의 도래로 인해 보조적으로 나를 도와주는 도구가 생겼고, 정보의 보급화로 인해서 예전처럼 정보를 가진 사람이 소수가 되어 그들이 가진 권한이 큰 현상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일반적인 전문성을 넘어서 “나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조예깊은 전문성”인 것 같다. 이제는 그것이 가치가 되고, 그것을 느끼기 위해서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Nominative Society (호명사회)
끝으로, 진정한 호명사회는 무엇인지 책에서는 가르쳐준다. 또한 이미 호명사회는 도래했음을 알려준다. 호명 사회는 “세대”가 아니다. 신세대만이 호명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답을 해준다.
“자신”이 주체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호명사회에 참여하기 힘들어진다. 출발점은 “나 자신”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며, 명시적인 직업에 기대는 것이 아닌, 나의 진정한 “업”을 찾아나가는 사람들만이 호명사회를 이루는 참여자가 될 수 있다.
나의 생각 💭
호명사회는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조선시대, 산업혁명 시대 등을 거쳐 인류가 진화해 온 “시대”가 되었다. 앞으로는 총칼을 가지고 싸우는 시대가 아닌, 나의 이름을 가지고 도반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시대가 계속될 것이다. 그 시대에 내가 남에게 불릴만한 좋은 이름이 없다면 안 될 것 같다. 차근차근히 나의 자산을 쌓아나가는 현재의 나에게 아주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내용이었다.
마치며
이 책을 읽으며 진심으로 공감하고 진심으로 감동받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또한 이 책은 단순한 사회에 대한 인사이트 뿐만 아니라 “사람”의 진화과정을 보여주는 책인 것 같다. 구석기 시대의 “사람의 육체적인 진화”에 이어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의 진화라는 것이 “사람의 정신적인 진화”에 가까운 것 같다.
마치 이전 세대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 하면서 진화하는 인류의 문명처럼 말이다.
과거의 모순, 불합리성에서 탈피하면서 “핵개인”으로 변화된 개개인들이 자신의 호오를 찾고, 그 호오를 같이 할 수 있는 “도반”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그리고 다시 그 네트워크가 개인을 “호명”하는 사회가 왔다.
과거에 단순히 암기하고, 충실하게 사는 사회에서,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의 맥락들을 이해하고 그 맥락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잘 던져야 하는 사회로 바뀌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정의하기로는 이 책은 현대 인류의 진화론이자 진화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생존론도 같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데이터에 근거해서 글을 쓰시는 작가분이 쓴 글이기에 뜬구름 잡는 소리가 없다. 또한 IT 업계에 종사하는 나로써는 이미 호명사회가 오래전부터 도래 했음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에 대한 다시 한번의 각인을 하게 되는 좋은 계기였다.
이미 “호명사회”에 오래전부터 참여한 나의 동류들을 알고 있다. 호명사회에 참여하는 시점들은 모두 다를 것이다.
현재 나를 돌아보며 잠깐의 휴식을 갖고 있는 나에게는 아주 좋은 시점에 접하게된 아주 좋은 책이었다.
또한 책을 보며 나름 다음번에 읽어보거나 봐야 할 만한 레퍼런스들을 모아봤다.
- Total Recall
- 가짜 노동, 진짜 노동
-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노력의 배신
- 시골에서 로큰롤
- 파리 이즈 버닝
- 골디락스 시대
- 행복의 기원
- 홍보의 신
- 언어의 높이뛰기